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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맨연구소
20년만에 록맨X5를 다시 제대로 즐겨본 소감 본문

90년대 캡콤에 대한 저의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바하, 스파 등등 수많은 명작들을 쏟아내던 시기였고 특히나 X시리즈에 대한 저의 애정은 각별했었죠. X4를 재미나게 즐기고, 언제 속편이 나오려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좀처럼 속편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X4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속편 계획이 표류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지요 😂
아무튼 오랜 기다림 끝에 X5가 발매되고, 벅찬 기대감을 안고 게임을 시작했지만...

이...이게 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게임의 상태는 이루 말할 것도 없이 처참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눈에 띄게 나빠진 그래픽에, 성우는 다 잘려나갔고, 이벤트신 동영상 따윈 꿈도 꿀 수 없었으며 새로 생긴 생소한 시스템들까지...도저히 적응이 안 되더군요. 캡콤은 그전에도 저예산 스핀오프 록맨 게임들을 여러 차례 조지긴 했습니다만, 넘버링 타이틀을 이렇게 패대기친 적은 X5가 최초였던 것 같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저는 2000년대 초중반 록맨 시리즈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죠 (물론 X5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X5부터 시작되는 후기 X시리즈에 대한 애정은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나마 X8은 꽤 오래 즐기긴 했던 거 같습니다만, 그것도 예전의 록맨 시리즈에 비하면 그냥 조금 하다 만 수준 밖에는 안 될 듯싶네요.
하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 🤣 유튜브 등지에서 X5,6의 공략이나 영상을 보며 제가 미처 몰랐던 장점들을 여럿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다시 한번 진득하게 해 봐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걸 실천을 안 해서 문제였죠 ㅎㅎ 그리고 드디어 얼마 전부터 록맨X 애니버서리 컬렉션 도전과제 올 클리어를 위해 X5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목엔 20년 만이라고 적어놓긴 했는데, 아마 실제로는 그 이상일 거 같네요. 록맨 팬을 자처하면서도 이리도 오래 X5를 방치했었던 건, 아마 발매 당시의 충격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예 록맨 사커나 슈퍼 어드밴처 록맨 같은 개똥겜 같았으면 낄낄거리면서 안주거리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는데, X5는 그 당시 너무 큰 배신감을 느꼈던 터라...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데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려버리고 말았네요.
아무튼 그렇게 X5를 다시 시작해서, 공략도 꼼꼼히 보고, 4회차 정도 플레이해서 도전과제도 전부 클리어한 상태입니다. 과연 제가 가지고 있는 X5에 대한 인상이 조금은 바뀌었을까요?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예전에 느꼈던 주요 감점 포인트였던 것들. 빈티 나는 그래픽, 음성 없음, 연출 빈약, 리소스 재탕 등등의 문제들은 캡콤이 예산을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 있다 쳐도 말이죠. 예산과 크게 관련이 없는, 런앤건 액션 게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함량미달이었습니다. 사실 발매 당시에도 느꼈던 점들이긴 합니다만, 다시 즐기면서 더욱더 확고하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네요.
록맨X 시리즈가 클래식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점은 뭘까요? 여러 가지가 거론될 수 있겠지만 저는 그중 하나가 바로 스피디한 진행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시, 공중 대시, 벽 타기 같은 여러 이동기를 활용해 휙휙 지나가며 다 때려 부수는 쾌감 말이죠. 하지만 X5제작진들은 X시리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이에 반하는 장치들을 너무나 많이 배치해 놓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내비게이션 문제. 전체 스킵도 안 되고 일일이 하나씩 눌러줘야 스킵되는 불편함. 내용도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쓰잘데 없는 것들 뿐입니다. 록맨 컴플리트 웍스의 내비 기능도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호출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나오지 않으니 없는 셈 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X5는 무조건 강제 소환이니 게임 흐름을 엿장수 마냥 끊어 먹죠. X5보다 훨씬 어려운 록맨&포르테 같은 게임도 내비 없이 잘만 하는데, 제작진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들어 둔 걸까요.

X5는 스피드한 게임 진행과는 거리가 일억 광년쯤 떨어져 있는 레벨 디자인이 많습니다. 느려터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나오는 적은 시그마 바이러스 한 마리. 속도가 느려서 가만히 있어도 맞추지 못하는 코미디를 선사합니다 (..)

그중의 최악은 단연코 타이달 맥코인 스테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느려터진 강제 스크롤로 진행하며 전함을 상대해야 하는데, X의 초기 무장인 포스 아머로도 너무 손쉽게 대처가 가능해 지루함이 배가 됩니다. 긴장감 1도 없는 구성.

타이달 맥코인 스테이지의 원류라 볼 수 있는 X2 버블리 트래블로스 스테이지에선, 전함급 적이 등장하더라도 상대하든 말든 플레이어의 자유입니다.

공격 중이 아니면 그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는 짜증 나는 적을 맵에 도배해 놓기. 자연스럽게 그냥 죽이지 않고 피해 가기에 주력하게 됩니다. 런앤건 게임의 쾌감을 죽여놓는 구성이죠.

X5엔 이해할 수 없는 레벨 디자인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장면. 무슨 숨겨진 방도 아니고 필수로 지나가야 되는 곳을 보너스로 도배해 놓는 건 뭔 의도였을까요. 중간지점이 세세하게 나눠져 있어서 잔기의 중요성이 이전 시리즈만큼 크지 않은 X5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퍼주는 디자인은 시리즈에서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앉으면 안 맞는 레이저인데, 그래픽 상으론 상반신 직격타 (..) 레이저 크기만 좀 줄이면 될 것을...

닿기만 하면 죽어버리는 용암지대 속을 평범하게 날아다니는 적들. 이 부분 플레이하면서, 라이드 아머 위에는 뚫려 있는데 왜 안 죽지? 라는 의문을 안 가진 사람이 없을 거 같습니다. 설정 상으론 위가 뚫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커버가 있다고 하는데, 그럼 게임 상에도 알아볼 수 있게 표시를 해주어야지요 😅

그래픽 상으론 가운데로 쏙 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뭐 당연하게도 안 됩니다 (..) 이런 미묘하게 틀어진 판정이나 그래픽 등이 은근 많은 게 허술한 게임들의 특징.

그렇다고 X5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대망작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예전에 비해 크게 평가가 바뀔만한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은 예산 안에서 이전 시리즈와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아머와 보스 레벨, DNA 프로그램 등. 한 번만 클리어하고 끝내버리는 게임이 아닌, 다회차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지향했다는 방향성 자체는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완성도 자체가 애매하다 보니까,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버린 것이 안타까울 뿐이죠. 만약 보스 레벨이 오르면 HP만 늘어나는 게 아닌, 패턴 추가가 된다거나 했다면 어땠을까요. 파츠 추가가 보다 직관적으로 표시되어서, 이게 누가 장착할 수 있고, 무슨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국 모든 원인은 시간과 예산을 타이트하게 잡아버린 캡콤 윗선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원래 록맨을 만들던 이나후네의 2개발부가 아닌, 3개발부에게 바톤터치...사실상의 짬처리를 해버린 셈이라, 그런 상황에서 시리즈 역사에 남을 우주명작이 나오길 바라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거 같기도 합니다. 26년 전 저는 그런 사정을 모르니 그저 욕하기 바빴지만,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지금에 와서는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많이 겪어봐서 그런지...조금은 흐린 눈을 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거 같습니다.
자 이제는 X6를 즐겨볼 차례인데, X6는 이미 발매 시점부터 X5보다는 좋게 인식하던 편이었습니다. 시리즈 팬들에게 최악의 불합리함을 자랑하는 게임으로 유명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론 꽤 참신한 요소들이 많았다고 느껴졌거든요. 난이도 어려운 게임을 좋아하는 제 개인적인 취향도 있고 말이죠. X6의 특수한 테크닉 등을 활용한 영상들도 봤었는데, 이제 드디어 그런 것들을 써먹을 날이 왔네요. X6도 클리어하고 나선 X7 🤣 과연 X7도 재평가하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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